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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이야기

도요새의 비밀 G#

70년대 암울했던 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젊은이들이 주눅들린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캠퍼스 잔디밭에서, 대학가 근처 선술집에서 목청 돋궈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너희들은 모르지/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저 푸른 소나무보다 높이/저 뜨거운 태양보다 높이/저 무궁한 창공보다 더 높이/도요새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가장 높이 꿈꾸는 새…

작곡가 박인호가 가사와 곡을 쓰고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도요새의 비밀>이라는 오래 된 노랫말대로 도요새는 가장 멀리 날고, 가장 높이 나는 새로 알려져 있다.
솔개보다 높이 날아 올라서 검푸른 바다와 목타는 사막을 지나, 길없는 광야를 따라 성난 비바람을 거슬러 훨훨 날아오르고 싶은 젊은이들의 억눌린 욕망을 대신 풀어주고 상처받은 영혼을 감싸 안아주던 새.
그처럼 한 시대의 희망이었던 도요새의 신화를 1만m 높이로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인도기러기의 고도가 최고라느니, 바스 해협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 바스 해협으로 귀환하는 쇠부리슴새의 여행 구간이 가장 길다느니 하는 짧은 지식의 잣대로 재려들지 말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첫발을 딛은 달과, 계수나무 그늘 아래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달이 서로 달라야 하듯 이 도요새는 여전히 가장 빨리 날고, 가장 멀리 보며, 가장 높은 곳에서 꿈꾸는 새로 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여자가 이슬을 먹으며 화장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고 세상의 그 어떤 꽃잎보다 고운 입술과 혀로 거짓이나 천한 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내야말로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할테니까 말이다.

 

첨부파일 도요새의비밀 G# ...mp3

 

어쨌든 도요목 도요과에 딸린 새들은 놀랄 만큼 먼 거리를 놀라운 속도로 여행하는 위대한 항행자(航行者)들이다. 흰엉덩이깝짝도요는 알래스카에서 멀리 남미의 타에라 데후야고까지 직선거리로 따져도 1만6천4백km를 여행하며, 큰뒷부리도요는 동부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서 뉴질랜드 해안으로 최소한 1만5천km를 날아간다.
북극에 가까운 동토지대에서 번식하는 흰메추라기도요도 가을이 되면 육지를 따라 캐나다 동해안을 거쳐 아르헨티나 내륙을 횡단, 푸에고 섬 남단에 도착해서야 여정을 멈추고 쇠메추라기도요도 같은 지역에서 출발해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는 강행군 끝에 파타고니아 해변에 도착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흰메추라기도요가 육로를 따라 여행하고, 흰메추라기도요가 바다를 여행의 통로로 삼아 안데스 산맥의 서쪽과 동쪽으로 큰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여행의 종착점은 같다는 점이다.
도요목 도요과에는 85~89종이 딸려 있고, 종의 다양한 만큼이나 크기도 15~45cm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인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도요새 무리는 꼬까도요, 좀도요, 종달도요, 민물도요, 붉은갯도요, 알락꼬리도요 등 41종이나 된다.

지느러미발도요 수컷의 비극

몸길이 약 19cm로 봄 가을에 동해안이나 남해안을 통과해서 열대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번식지로 돌아가는 나그네새인 지느러미발도요는 암수의 역할이 뒤바뀌어 눈길을 끈다. 암수가 대개 같은 색깔의 깃털을 갖고 있는 친척들과는 달리 지느러미발도요 암컷은 수컷에 비해 튀는 치장을 하고 있는데 반해 수컷이 흐릿한 보호색의 깃털을 갖고 있다.
번식기가 되면 한껏 마음이 들뜬 암컷들은 번식 경쟁자인 다른 암컷에게 공연한(?) 시비를 걸어 멀리 쫓아버리고는 단말마에 가까운 노래로 수컷을 끌어들인다. 어여쁜 여자의 얼굴과 새 모양을 한 바다의 요정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에 홀려 다투어 목숨을 던지던 뱃사람들처럼 마력이 깃든 암컷의 유혹에 매료된 수컷은 비몽사몽 간에 암컷의 등짝으로 기어 오른다.
색(色)자 위에서 시퍼런 날을 세운 칼끝이 노려보고 있는 한자가 상징하는 것처럼 단 한 번의 정사는 지느러미발도요 수컷들에게 철컥 족쇄를 채워버린다. 능동적이고 의지가 강한 암컷들은 포로로 잡은 수컷을 자신의 영토로 끌고 가 장차 해야할 ‘노예의 의무’를 숙지시키는 데 만약 수컷이 딴전을 피우거나 소극적으로 행동하면 예의 세이렌의 노래를 반복해 꼼짝 못하게 만든다.
수컷이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뒤를 따르면 암컷은 스스로 선택한 둥지로 가서 알을 낳은 뒤 새로운 봉을 찾아 훌쩍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수컷은 하릴없이 알을 품고, 알이 부화되면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꼬락서니를 지켜 보노라면 사내된 자 모름지기 3개의 부리를 삼가야 한다던 옛 어른들의 가르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끼를 돌보는 육아책임을 벗어던진 암컷들이 얼마나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가 하면 흰죽지물떼새나 랩랜드긴발톱멧새 같은 다른 종족의 수컷들에게까지 포로포즈를 할 정도다. 물론 신호체계가 달라 딱지를 맞긴 하지만.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