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총각 (處女總角)
작사 범오/ 작곡 김준영/ 취입 강홍식,
1934년, 콜럼비아 레코드
(1)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네
응- 응- 응- 으- - -응- 응으- - - 응
(2) 호-미 들고 밭 가는 저- 총각의 가슴에도
봄은 찾아왔다고 피는 끓어 울렁울렁
콧노래도 구성지다 멋드러지게도 들려오네
응- 응- 응- 으- - -응- 응으- - - 응]
(3) 봄-아가씨 긴 한숨 꽃-바구니 내던지고
버들가지 꺾어서 양지쪽에 반만 누워
장도 든 손 싹둑싹둑 피리 만들어 부는구나
응- 응- 응- 으- - -응- 응으- - - 응
(4)노래실은 봄바람 은은하게 부러오네
늙은총각 기맥혀 호미자루를 내던지고
피리소릴 맞쳐가며 신세타령을 하는구나
응- 응- 응- 으- - -응- 응으- - - 응
지금부터 80여년 전 1934년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취입한 디스크다. 어느날 국일관 뒤 어느 여관방에서 약주에 얼큰해진 강홍식이 흥타령을 부르자 같은 자리에 있던 김준영이가 그를 변조해서 취입하자고 제의, 즉석에서 작곡한 것이 오늘날의 '처녀총각'이다. 발매 당년에 이미 10만매에 달하는 실적으로 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공전(空前)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때 취입료로 김준영은 피아노를 사고, 강홍식은 마산에 양옥을 한채 사서 전옥과 스위트홈을 꾸몄다나 어쨌다나... (원본: 김해김씨 율은공파)
무성영화 배우겸 가수 강홍식(姜弘植) 강홍식(姜弘植, 1902~1971)과 전옥(全玉, 1911~1969) 한국 연예사에서 최초로 탄생한 부부 연예인은 1926년 장한몽 長恨夢 영화에 출연한 강홍식과 눈물의 여왕이며 비극의 주인공인 전옥이 첫 테입을 끊었다. 1920년대 말 극단무대에서 만나게 된 강홍식과 전옥은 1932년 첫 딸 강효실(탈렌트 최민수의 모친)을 낳으면서부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면서 강홍식은 레코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나물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타령이 절로 난다 흥~~ <처녀총각> 노래가 1934년 초봄의 바람과 더불어 전국으로 번지기 시작하여 1934년에 대 힛트하였다. 이 노래로 콜럼비아 레코드의 작곡가 김준영은 당시에는 희귀하고 고가인 피아노를 장만하고 노래를 부른 강홍식은 아담한 주택도 새로이 장만하였다. 이 노래는 북한 방송에도 가끔 흘러 나오는데 1991년 8월 16일 KBS <남북의 창>에서도 <처녀총각> 노래가 나오는 북한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다.
강홍식이 <극단연극사>가 단성사에서 연극공연을 할 때에 단성사 부근 여관에서 술을 마시며 타령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을 본 작곡가 김준영이 타령의 선율에 악상이 떠올라 곡을 만들어 구성진 강홍식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엔카의 2박자로 만든 <처녀총각은 당시의 점잖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1930년 초의 느리고 서정적인 노래를 주로 듣던 사람들에게는 유성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2박자의 경쾌한 노래가 특히 젊은 신여성들이 또박또박 걷는 걸음걸이와 비교되어서 무안하게 느껴지고 뒷덜미가 가려울 정도로 신경에 거슬리는 시대상이었다. 1925년 12월 16일 <조선일보>에 계림영화협회의 배우 기사에서 강홍식에 관하여 "대정영화에서 배우활동을 하고 또 체조학교에서 얼마간 공부를 하여 독일 가는 길에 무성영화에 출연하기 위하여 귀국한 21세의 강홍식…" 운운의 기사 중 체조학교는 무용학교를 말하는 것으로 무용의 인식부족으로 체조로 표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