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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이야기

아버지 이수미



아버지(Pa Pa) - 이수미
해가 뜨나 해가 지나 오직 한마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한마음
자식 하나 잘되기를 오직 한마음
가슴 조여 빌고 빌던 오직 한마음
행여나 잘못 될까 오직 한마음
몰래 숨어 지켜보던 오직 한마음
아버지 말씀은 없어도
높으신 그 뜻을 내 잊으리
아버지 말씀은 없어도
높으신 그 뜻을 내 잊으리

해가 뜨나 해가 지나 오직 한마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한마음
자식 하나 잘되기를 오직 한마음
가슴 조여 빌고 빌던 오직 한마음
아버지 말씀은 없어도
높으신 그 뜻을 내 잊으리
아버지 말씀은 없어도
높으신 그 뜻을 내 잊으리

해가 뜨나 해가 지나 오직 한마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한마음
자식 하나 잘되기를 오직 한마음
가슴 조여 빌고 빌던 오직 한마음
오직 한마음 오직 한마음


이수미 : 1952년 1월 25일 출생

목포여자고등학교 졸업

이수미(1952년 1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71년 《때늦은 후회지만》으로 데뷔하였다.

 1973년에는 대천해수욕장에서 피습을 당하였다고 하였다가,

자해소동으로 밝히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대마초 관련으로 제재를 당하기도 하였다.

가수  이수미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께 도움이 되고자

하나님 저 가수 시켜주세요라고 간구하며 고등학교 3학년 때 나간

노래자랑에서 5주 연속 1등을 했고, 심사위원이었던

오아시스 레코드사 사장에게 픽업이 되어 실력으로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낙향하리라 다짐하며 북아현동 달동네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사에서 여고시절을 부를 가수를 찾는데

당시 오아시스의 모든 내놓으라 하는 여가수들이 다 동원이 되어

내부오디션을 치른 후 막내인 그의 차례가 되어 불렀더니

작곡가 마음에 들었던지 다음 날 바로 녹음을 하게 되었다.

마침 졸업시즌이어서 이 곡은 대히트를 쳤고,

신인가수라고 불려지는 시간도 없이 바로

10대 가수, 7대 가수로 선정이 되며 승승장구를 하게 되었다.

 

다음 해 여름이 되어 오만명 정도가 모여든 대천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을 위한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괴한의 끔찍한 습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 찰나 어떤 강한 손길이 왼쪽 어깨를 붙잡아 돌아보게 했고,

의사의 말로는 정말 바늘구멍만한 차이로 급소를 피했다고 했다.

비까지 억수같이 오는 상황에서 지혈이 되지 않아

마치 새우처럼 꽁꽁 묶여 대천 시내로 가는 사이

군인 같은 머리가 짧은 사람 짓이라고 했더니

피서시절을 겨냥해 아르바이트 나온 학생들을 모두 잡아 구치소에 수감해버려

빚을 내어 가을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던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아 그들을 풀어주자는 좋은 의도로 자해한 것이라고

있지도 않은 소리를 해버렸다.


그러자 사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스캔들까지 붙여져 보도되었고,

그 일로 스무 살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녀는 너무나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한 것도 억울한데

억장이 무너지는 누명까지 써야 하는 그 심정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지만

입을 꼭 다물고 인내하였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내 곁에 있어 주라는 곡으로 재기를 해

다시 인기를 얻었지만 사람들을 통해 받았던 상처로 인해

혀가 굳어져 1년 반 동안이나 말을 할 수 없는 시련이 왔다.

침도 맞아 보았지만 혀는 더욱 굳어졌고

의사들은 말을 많이 하라는 처방만을 내렸다.

할 말이 없어 입을 닫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 억장이 무너져 말문이 닫힌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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