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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이야기

Don't forget to remember (BEE GEES)




Oh my heart won't believe
that you have left me
I keep telling my self that it's true
I can get over anything
you want my love
But I can't get myself over you
Don't forget to remember me
And the love that used to be
I still remember you
I love you
In my heart lies a memory
to tell the stars above
Don't forget to remember me my love
On my wall lies
a photograph of you girl
Though I try to forget you somehow
You're the mirror of my soul
so take me out of my hole
Let me try to go on living right now
Don't forget to remember me
And the love that used to be
I still remember you
I love you
In my heart lies a memory
to tell the stars above
Don't forget to remember me my love

영국의 더글라스에서 태어난 베리 깁(Barry Gibb, 1946년 9월 1일 출생), 베리의 쌍동이  형제인 로빈 깁 그리고

모리스 깁(Robin Gibb, Maurice Gibb)은,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댄스 밴드를 갖고 있던 부친과 싱어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악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호주의 브리스베인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이들은, 1956년에 B. G. S.라는 아마츄어 록 그룹을 결성해

   연주 활동을 시작했으며, 호주의 해안 도시 시드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1962년에  그룹 이름을 Bee Gees로 개명했다. 

   1963년에는 페스티발 레코드사에서 자신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싱글  <The Three Kisses of Love>를 발표했으며,

그후 <Spick & Speacks>를 발표해 대히트시키므로써 그들의 이름이 호주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은 이들은 1967년 2월에 영국으로 건너가, 드러머인

   콜린 피터슨과 기타리스트 빈스 멜러우니를 맞아들여 사운드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레코드업계의 거물 로버트 스틱우드의 도움을 받아 그해 4월에 영국에서의

   데뷰 싱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을 발표했다.

   그해의 여름에는 <To Love Somebody>와 <Holiday>를 발표해 영국과 미국에서  크게 히트하였다.

   앨범 「Bee Gees First」, 「Horizontal」과 세번째 앨범 「Idea」에서는

   <Massachusetts>, <I've Gotta Gat A Message To You>, <I Started a Joke>

   와 같은 톱 텐 싱글과 앨범을 계속 발표하면서 순식간에 유명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한 빠른 성공은 그룹 자체에 갖가지 부작용을 불러 일으켰는데, 드러머인

   콜린 피터슨과 기타리스트 반스 멜러우니가 탈퇴하는 등 그들이 감당하기에 힘든 일들이

   계속 일어나, 1969년에 해산되고 말았다.

   당시 발라드 풍의 서정적인 그들의 노래를 즐기던 비지스의 팬들은 아쉬워하는 언성이

   드높았으며, 재결합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로빈은 솔로로 전향해 활동을 하였고, 베리와 모리스도 듀오로 잠시 활동들을

   벌였지만, 예전의 비지니스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세명의 형제들은, 1970년 말에 다시 모여 <Don't Forget To Remember>를

   발표하면서 새롭게 등장하였으며, 1971년에 앨범 「In The Morning」을 발표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 디스코 붐이 한창 성행할 무렵에는, 흑인적 휠링인 가성 섞인

   목소리로써 <You Should Be Dencing>과 영화의 사운드 트랙인

  「Saturday Night Fever」를 발표해 일부에서는 비난의 소리가 높기도 하였지만,

   팝계의 진기한 기록과 계속 이어지는 히트로 70년대 최고의 슈퍼 그룹으로 군림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 트랙은 제21회 그래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1978년에는 또하나의 사운드 트랙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발표했으며, 이어서 「Spirits Having Flown」 등 앨범을 계속 발표하면서도 세 명의

   형제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나갔다.

   베리 깁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앨범 「Guilty」를 제작하면서 갖가지 염문을

   뿌리기도 하였으며, 이본느 엘리먼과 함께 <If I Can't Have You>를 발표하면서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끊임 없이 꼬리를 물고 이들을 괴롭히던 해산설에

   대해서는 강력한 부정으로 대응하여 왔지만, 1981년에 앨범 「Living Eyes」를

   마지막으로 해서, 1982년 9월에 정식으로 해산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그들 형제에게 불행과 악재는 비극으로 다가온다.

   ‘깁’의 비극은 지난 1988년에 시작되어, 막내 동생인 ‘앤디 깁’은 심장질환으로

   2003년에는 셋째 ‘모리스 깁’이 숨을 거두면서 비지스는 결국 해체된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싱어인 로빈 깁마저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젠 맏형인 베리 깁만 남게 됐다.  



  팝 역사를 통틀어 비지스(The Bee Gees)만큼 오랫동안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며 다양한

  음악성을 섭렵해온 아티스트도 없었다.

  1960년대 서정적인 팝송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이들은, 1970년대에는 디스코 열풍의

  최전선에 서서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막대한 성공을 수확한 바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깁(Gibb)가 3형제로 구성된 이 밴드는 그렇게 전대미문의 전설로   남았다.

  1946년생인 배리 깁(Barry Gibb)과 1949년생 쌍둥이 형제인 로빈 깁(Robin Gibb),

  모리스 깁(Maurice Gibb)으로 조직된 이 3인조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뒤,1958년부터 ‘Brothers Gibb’의 머릿 글자를 따 ‘B.G.'s’란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2년부터 레코드를 발표하며 오스트레일리아 음악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던 이들은,

  Beatles의 전세계적 성공에 큰 자극을 받아 1966년 영국으로 거점을 옮겨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영국에서 매니저 Robert Stigwood를 만난 이 3형제는, 곧바로 그와 계약을 맺고

  Vince Melouney, Colin Petersen 등 2명의 멤버를 더 가담시켜 완전한 밴드 포맷을 짰다.



 

 1967년, 새로운 비지스가 발표한 첫 싱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이 영국에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하자 ‘Holiday’, ‘To  Love Somebody’,

  ‘Massachusetts’ 등의 후속곡들이 줄줄이 히트대열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특히 ‘Massachusetts’는 비지스 최초의 영국차트 1위곡이었다).

  게다가 데뷔앨범 [The Bee Gees 1st]는 미국에서도 차트 7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며

  비지스의 명성을 미국에서도 널리 떨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로도 비지스의 성공가도는 ‘World’, ‘I've Gotta Get A Message To You’ 등의

  잇단 대히트로 거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69년 발표된 더블앨범 [Odessa]는 결과적으로 밴드의 균열을 야기하게 되는데,

  밴드의 리더였던 배리 깁이 이 앨범을 통해 다소 실험적인 비전을 표출하자 평소부터
  비지스의 음악성이 못마땅했던 빈스와 콜린이 탈퇴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전부터 솔로활동에 뜻을 두고 있던 로빈 깁마저 팀을 떠나는 상황에 처하자 비지스는

  사실상 와해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남겨진 배리와 모리스는 2인조 진용으로 [Cucumber Castle]이란 앨범을 발표하긴 했지만,

  결국 1970년 로빈이 다시 팀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고서야 비지스의 온전한 컴백이 성립될  수 있었다.



 

 배리, 모리스, 로빈의 3인조 라인업으로 다시 돌아온 비지스는 일단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를 미국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화끈한 복귀 신고식을 치른 뒤, 한동안

  성공적인 활동을 영위하다가 19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며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대단히 현명한 것이었다.
  그들은 한창 폭발 직전에 있던 디스코의 열기를 지근거리에서 체득할 수 있었고, 1975년

  앨범 [Main Course]에서부터 그러한 성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앨범에서는 ‘Jive Talkin'’이 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물론 비지스의 야심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1976년 ‘You Should Be Dancing’이란 곡을 또 한차례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디스코의

  슬슬 선두주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비지스는, 1977년 전세계 극장가를 석권한 대흥행작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의 영화음악을 맡으며 드디어 필생의 대박을  터뜨리고야 만다.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Night Fever’(모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등 비지스를 대표하는 대히트곡들이 이 사운드트랙을 통해 배출되었으며,

  배리 깁의 닭살 돋는 가성 창법이 디스코의 상징처럼 부각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사운드트랙 앨범은 그 해 그래미의‘Album Of The Year’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즈음 비지스는 애지중지하던 동생 Andy Gibb의 가수 데뷔를 적극 지원하였고,

  앤디 역시 형들의 막강한 후광을 업고 넘버원 히트곡들을 양산해내며 세계적인 아이들 스타로

  부각되었다.

  한편 비지스는 1979년에도 비슷한 성향의 앨범 [Spirits Having Flown]을 발표하고,

  넘버원 히트송 ‘Tragedy’를 배출해 내며 디스코 붐으로 인한 이득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는 이들도 다소 침체기를 맞게 되는데, 그 사이 배리 깁은 작곡가로

  활동하며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를 통해 수많은 히트곡들을 빚어내는 수완을 발휘하였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난 밴드의 침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1988년에는 그토록 아꼈던 동생 앤디가 약물중독으로 30세의 나이에 사망하는

  비극까지 겪게 된다.
  1997년에야 앨범 [Still Waters]로 플래티넘을 획득하며 왕년의 위신을 회복한 비지스는,

  같은 해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는 감격을 누렸다.

  2001년에도 이들은 [This Is Where I Came In]을 차트 16위에 올려놓는 저력을 과시하며

  21세기에도 비지스의 신화가 여전할 거라 강변하였지만, 2003년 1월 21일 모리스 깁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비지스라는 이름을 지속시킬 여력이 없게 되고 말았다.
  결국 비지스는 모리스 깁의 죽음과 함께 45년간에 달하는 긴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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